[공지] 본거지는 네이버 블로그...


제 본거지는 네이버 블로그 입니다 → http://blog.naver.com/halmi

이글루에는 역사관련만 따로 올립니다.
네이버판에는 더욱 정확하고 다양한 내용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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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2 -
네이버와 이글루스 모두 '아케치경감의 삐딱거리'로 통일해 쓰고 있었는데... 제가 헷갈려서(ㅡ.ㅡ;;;)....
이글루스 쪽은 '탁상공론'으로 바꿨습니다.
어짜피 저야 탁상공론일 뿐이니까요. ^^

[문헌] 카톡으로 닥달하는 키요마사 팀장 (가등청정/기요마사) 일본성곽/왜성




1606년, 에도성 증축공사에 동원된 카토 키요마사가 가신들에게 보낸 편지들인데...
팀장님이 메일로, 카톡으로 매일 닥달하는 것 같음.


1) 첫번째 4월 13일의 편지.

야, 돌이 적잖아.
내가 지시한거랑 가공도 틀리고.
놀랬다 놀랬어.
지시전달담당자 고로자에몬은 뭐하고 있었던거냐?
딴사람 보냈으니까, 돌 숫자랑 모양 확인해서 보내.

 (게다가 장문임. ㅡ.ㅡ;;;)
 에도 일대는 적당한 채석장이 없었기 때문에(무서운 지평선, 관동평야~), 멀리 이즈반도 동쪽 해안 같은데서 배를 띄워 가져왔는데, 그 상태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


2) 그 다음 5월 1일 편지.

구석에 놓을 거석은 앞으로 5개면 OK.
앞으로는 작더라도 길면 OK.
이시가키가 착착 쌓아올라 가니까 작은게 더 아구가 맞을 수 있다.
근데, 쿠마모토성 쌓을 때 같은 그런 작은건 쓸모 없다.



3) 또 그 다음 5월 9일 편지.

구석돌(角石)만 도착하면 다른 다이묘들을 추격해서 먼저 완성시킬 수 있을텐데. 쩝.
저번에 도착한 돌 중에 '쇼베에'라고 적힌 돌이 딱 좋던데, 그거랑 같은 사이즈로 보내라.
구석돌이 하루에 한개씩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도착을 안하니까 일정에 지장이 많다

실제 자신의 쿠마모토성은 아직 과도기에 만들어져서, 나중에 참가한 나고야성 같은데가 더 발전적인 돌 쌓기를 보여줌.


* 참고문헌 : 加藤清正の生涯ー古文書が語る実像 - 日日新聞社(2013)


P.S :
정작 천하의 에도성이 '불완전한 이시가키(石垣/석축)'라는 것은 앞서 말씀을 드렸고...

[사진] 서국은 석축, 동국은 토루

https://blog.naver.com/halmi/221174880513


[링크]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는 야스쿠니 신사 - 141019 전국시대 & 역사

                                                                                                                                               

탄약과 식량은 링크로 대체.


3년전으로...
영원의 제로, 바람이 불다 때문에 한참 일본에서 제로기 인기가 높을 때입니다.

우리한테는 심히 불쾌한 곳이고, 일본 천황도 방문을 하지 않는 곳이지만...
여기 오는 시민들이 모두 우익은 아니라능.

[제시] 신립 충주/탄금대전투의 조선군 규모 이설(異說). 임진왜란관련

저번에 프로이스 일본사를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된다고, 충주 탄금대 조선군 8만명 기사를 거론했는데...
결국 이런 리플이 달렸다.



햐... 역시 이런 사람들은 세상 곳곳에 있다. 그래서 그런 글을 올렸던 것이다.
이사람 아이디를 네이버/구글에서 검색해봐야, 인터넷 활동은 하나 밖에 안 보이는 갑툭튀.
이런 건 소통의 대상이 아님. 바로 차단.
나는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내 정신건강이 더 중요하다.

난 바닷물이 짜다는 걸 알기 위해 바닷물을 다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다.
취미가는 학자들이 짜다하면 짠갑다 하면 되는 사람이다.
바닷물은 학자들이 우리대신 배터지게 먹어줬잖아. 학자들이 바닷물 마셔주고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서 다른 사회생활 한거다.
그래서 나는 취미가로 남는거다.


자... 이 탄금대 전투의 조선군 병력 이설(異說)을 살펴보면...

1) 선조실록은 해당 부분에 아예 병력 숫자 없음.
나중에 1596년 1월 비변사에서 하삼도 방비책을 건의하는 기사에서 10만설이 나오는데...
이는 본문이 아니라 주석으로 『신립이 험조한 곳에서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평원 광야(平原廣野)로 영입(迎入)함으로써 좌우에 적이 가득 차서 미처 교전도 못하고 10만의 정병(精兵)이 모두 패하고 말았다』 며 통탄한다고(通哉) 적고 있음. 단순한 수식으로 봐야 함.


2) 선조수정실록에는 신립이 떠날 때 류성룡에게 8천명을 받아서 서울에서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 밖에 없음.

3) 정작 신립한테 병력을 줬다는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신립이 얼마 못 데리고 가서, 현지에서 모았다고 했음.
임진왜란 당시 전시수상을 했고, 신립에게 약간의 병력을 넘겨줬던 당사자인 유성룡의 말이 신빙성 있음.

4) 난중잡록은 『신립은 여러 도의 정병(精兵)과 무관 2천 명, 종족(宗族) 1백여 명, 내시위(內侍衛)의 군졸 등 도합 6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조령으로부터 다시 충주로 후퇴하였는데』라고 적혀 있음.

5) 코니시일행기(小西一行記)에는 신립이 한양에서 이끌고 온 37,500명에, 충청도에서 먼저 모은 12,500명이라고 되어 있음(총 5만명).
그런데 이 책은 코니시 유키나가를 주인공으로 한 군기물(군담소설)임.
군기물을 역사책으로 취급하면 안됨.
이미 이 문헌도 김시덕 교수가 연구를 했음.

6) 태합기에 '군세 6,7만(軍勢六七万)'이라고 적혀 있지만, 태합기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 아니라, 사료를 취합해서 이야기꺼리로 만든 것(브리태니커 재팬 표현으로는 '준 군기물')임.
그러다보니 조선군이 농성하는 걸로 나옴. 그것도 믿을래?

7) 그리고 8만명이라고 써놓은게 프로이스 일본사.
앞서 말한대로, 자기가 직접 본 게 아니라, 건너 건너 들은 것임.

8) 임진전란사(이형석), 임진왜란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등, 정상적인 대부분의 연구결과는 8~9천명이라고 명시하고 있음. 학자들은 바보가 아님.
(당장 네이버에 탄금대전투라고 검색해서 각종 백과사전 살펴보면, 전부 8~9천명)

신립이 당장에 5만~10만을 모으고 내려갈 수 있을 정도라면, 왜군이 어떻게 조선팔도를 유린할 수 있나?
그 정도 많은 병력이 죽었다면, 조선의 벼슬아치들도 그만큼 죽어서, '탄금대에서 죽음'이라는 프로필을 가진 인물들이 엄청나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
써져 있는 대로 믿을거 같으면 왜 실록의 8천명은 왜 안 믿고, 징비록은 왜 안 믿나?
사료는 교차검증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나?

기본부터 알고 이야기 하기 바람.

[링크] 거북선=잠수함? 메쿠라부네=잠수함? 임진왜란관련


탄약과 식량은 링크로 대체


링크지만 유용한 이야기라고 자부 한다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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