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역(役)'이란 말이 불순하다고? - 임진왜란... 050829

요즘은 다들 귀하게 자라서 많이 배우고 똑똑하신 분들이 인터넷에 넘쳐나니...

걸핏하면 우기고 보는 행태로 가득찬 이 세상.

조금만 뒤져보고 알아보면 떡하니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자기가 모르고 생소한 것이라고, 그 즉시의 자기 생각만 가지고 우기고 봅니다.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을 놓고, 우물안 개구리가 태클걸고 우기고 보는 행태도 있었는데...

 

지난달에, 인터넷의 어떤이가 임진왜란을 '분로쿠의 역'이라고 표현한 것을 놓고 조선을 무시했다는 둥, 비하한 표현이라는 둥... 욕먹을 짓이라는 태클이 들불같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사용한 사람의 의도는 '일본측의 자료라는 것에 대한 강조'였다고 하는데...

분로쿠의 역이 그렇게 욕먹을 짓이란 말인가요?

(이달 초에 글 올리다가 오류가 나서, 이제서야 다시 씀. ㅡ.ㅡ;;)

 

일단...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침략에 맞서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한반도에서 벌인 7년간의 국제전쟁을 넓게 가르키는 말』...이라 하겠는데...

조선(Korea)의 공식적인 표기가 '임진왜란(壬辰倭亂)/정유재란(丁酉再亂)'...

일본의 공식적인 표기가 '분로쿠/케이쵸의 역(文祿慶長の役)'...

...인 것이고, 1차 러쉬를 임진왜란, 2차 러쉬를 정유재란으로 나눠 좁게 가르키기도 하는 것이죠.

 

일본에서의 명칭은 1차 러쉬(임진왜란)가 '분로쿠의 역'이고, 2차 러쉬(정유재란)가 '케이쵸의 역' 입니다.

일단, 지난달에 일어난 '분로쿠의 역'이란 표현은, 자료인용에 있어서 원본 표현의 전달이란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표현에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역(役:에키)'이라는 말입니다.

이 '역(役:에키)이라는 표현이 불순하다고 하는데, 뭐가 불순하다는 건지. ㅡ.ㅡ;;;

 

'분로쿠/케이쵸의 역'이란 표현 말고, 히데요시의 唐入り라는 표현도 쓰이고, 간간히 朝鮮征伐, 大陸進出이라는 표현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며, 그런 조선정벌이니 대륙진출이니 하는 말에는 우리로써 기분나쁜 불순함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役이라는 글자에 '조선을 치다', '조선정벌'이란 뜻이 있다고 열을 내는 겁니다.

과연 그런지?

그 사람들, 왕편(?)은 찾아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일단, '정벌'이란 뉘앙스는 Attack에서 가능한 표현.

그럼 중국에선 임진왜란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만력 조선의 역(萬曆朝鮮役)'이라고 표현하는데...

조선에 원군을 보내 조선땅에서 침공군을 '저지'하려고 한 중국에서도 '役'이라는 표현을 쓰네요.

'분로쿠의 역'이란 표현에서 열을 냈던 그 사람들... 과연 만력조선역이란 표현은 알고 열을 냈을까요?

내가 볼 땐, 앞뒤도 모르고 일본꺼니까 무조건 삐딱하게 보았을 뿐인듯 한데요.

 

자, 그럼 왕편(?)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요.

가장 활용성 높은 동아출판사의 히트 옥편에서 보자면...

http://blog.naver.com/halmi/40010814518

役에 4가지 뜻을 나열해 놨군요.

1. 부리다.

2. 역사, 부역.

3. 일, 소임.

4. 싸움, 전쟁.

 

자~, 그럼 답 나왔죠? 정벌이니 하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저 전쟁일 뿐입니다.

네? 정벌도 전쟁의 한 형태이니, 저 전쟁이 정벌을 의미하는 명사/동사가 아니냐구요?

그럼 좋아요. 이런 옥편은 '한자'를 위한 것이니, '한문'을 위한 책을 펼쳐 볼까요.

http://blog.naver.com/halmi/40010793256

 

이 책에서도 4가지 뜻을 열거하여...

원래 이 글자의 뜻은, 사람을 멀리 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전이되어...

1. '일을 시키다(부리다)'다가 되었고...

2. 부려먹다.

3. 의무로써 인부나 군대가 부려먹히는 노동이나 전쟁. -> 전역(戰役), 부역(賦役).

4. 역할에 맞춰진 일.

 

동아옥편이든 학연 한자원이든 분류는 다르지만 그 안에 구성된 뜻은 모두 같다는 걸 알 수 있죠.

한자원에서 특이 점은,

4번째 '역할에 맞춰진 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원래 한문에 있던 글자쓰임이 아니라, 일본에서 만들어진 글자쓰임이라는 점과, 5번째 뜻이 하나 더 있다는 겁니다.

1~3번은 '에키'라고 읽는데 반해, 4번째와 5번째는 '야쿠'라고 읽는데...

4번째 경우에는, '단속역', '역할' 등의 표현등이 해당하고, 5번째 쓰임은 화투나 마작에서 점수가 나는 패의 조합.

 

자, 옥편도 살펴봤는데, 정벌이란 불쾌한 뜻은 없고, 그저 단순한 '전쟁'일 뿐입니다.

'역'이란 표현에 열을 낸 사람들은, 자기한테 생소하니까 엉뚱한 억측하고서는 흥분한 경우가 되겠죠.

 

제발 우기기 신공을 발휘하시는 분들...

이미 앞서 설명한 '조선만력역'이란 예는 어쩔 것이며...

동아옥편에선 '청산리전역'이란 표현을 예로 들고 있고(그게 낯선 표현일지라도)...

일본사에 '전9년/후3년의 역(前九年後三年の役)'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같은 헤이안시대의 무사의 태동이라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스미토모의 난'과 비교하면, 다른건 '난'인데, 전9년/후3년은 '역'입니다.

아직 흡수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동북지방의, 그동네 '전쟁'이라는 거죠.

(당연히 다른 '난'들이야 말로 형식상으로 정벌을 동반했지요. 양란에 정동대장군, 정서대장군에 임명된 영감님 이름이 후지와라노 타다후미(藤原忠文))

 

결정적으로,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한 일을, 일본에선 文永의 役(1차), 弘安의 役(2차)이라고 부릅니다.

자, 고려와 원나라가 쳐들어오고, 자기들이 방어하는 입장인데, '역'이라고 부릅니다.

이런데도 그 사람들, '정벌'이니 어쩌니 끝까지 우기실란가?

 

조금만 알아보면 바로 나오는 것들을(옥편만 뒤져봐도)...

어디서 갖다 붙여서 열내고 우기시는 건지... 아햏햏합니다.

 

P.S:

오히려 우리가 '왜란'이란 이름을 통해, 일본을 이중으로 낮추서 표기하고 있죠.

저 개인적으로야, 익숙해져버린 '임진왜란'이란 뿌리깊은 표현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 전쟁의 실체는, '조일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객관적 상황은, 조선&명 VS 일본간의 정규전.

(역사적 실체를 인정해야, 역사로써의 교훈이 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할 수 있는 법)

by 明智光秀 | 2008/07/17 22:30 | 임진왜란관련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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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쟈쟈 at 2008/09/06 00:28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개인적으로도 입맛이 쓴 부분이었는데, 덕분에 다른부분까지 잘 배웠네요^^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8/09/06 17:17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도 있군요. 덕분에 좋은 거 배웠으니 고마워해야 할까요?
Commented by 明智光秀 at 2008/09/06 22:02
예전에 역갤하고 다음의 모 카페에서 그거 가지고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길래... 흠흠.
Commented by 페스츄리 at 2008/09/21 11:41
그러고 보니 국가간의 정규전은 실제로 중국의 사서에도 "목야지전" "탁록지전" "알여지전" "즉묵지전"등으로 쓰고 왕조내의 통치에 반기를 든 반란은 "황소의 난" "안사의 난" "영가지란" "팔왕지란"이라고 쓰는군요. 그런데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꼭 만력조선역(아마 제가 알기로 이 표현이 명실록의 표현으로 아는데..)이라는 말외에도 "임진병화" "임진왜화"등등으로도 쓰지요. 또 현대중국에서는 "원조항왜전쟁"이 일반적 표기인듯 합니다.
Commented by 페스츄리 at 2008/09/21 11:45
그런데 이런 글을 쓰면서 제가 상당히 신경쓰이는 것은 굉장히 심기에 거슬리지나 않을지 하는 것입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말씀하시길..
Commented by 이리 캐쉰 at 2009/03/16 17:14
아케치 본좌님(맞는 용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의 정론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이라는 용법이 전쟁에도 쓰였다는 것을 강변하는 양반들도 꽤 있더군요. 아마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권기'라는 분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아케치 본좌님의 전문지식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정규군끼리의 대결이니 '조일전쟁'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후대의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경우도 근현대사를 연구하시는 김호일 교수님 같은 분은 에누리 없이 '조불전쟁' '조미전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난'이 아닌 'XX전쟁'으로 표기해야 타당할 듯합니다.
Commented by 히데요시 at 2009/10/25 22:31
대체로 동감하나, 명제국이 참가한 전쟁을 조일전쟁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 지... 차라리 히데요시전쟁은 어떨지요?
한국정치외교사논총의 전쟁명명의 정치학이란 논문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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